전 KBS 아나운서 정미홍에 대한 평가가 굉장히 다양합니다.

박근혜를 끝까지 옹호하는 '마지막 보수 지킴이'부터 박근혜 등의 국정 농단 세력을 끝까지 옹호하는 '극우 꼴통'이라는, 극과 극의 평가를 받고 있죠.

 

또한, 정미홍이 과거 야당 인사들을 도왔다가, 최근 극우파(?)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본인의 정치적인 야망을 위하여 '일부러 그런다'라는 의혹도 받고 있고요.

 

과연 정미홍은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실검을 장악하기 위하여 일부러 '막말'을 쏟아내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녀에게 숨겨진 사정이 있는 걸까요?

 

정미홍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왜 그녀가 오늘날처럼 굉장히 색다른(?)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충격을 주는지 제대로 짚어보기 위해서는, 정미홍의 젊은 시절과 그녀의 가족들을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정미홍의 젊은 날은 상처투성이의 나나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정미홍을 태동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죠.

 

그 외에, 정미홍 가족, 정미홍의 미국인 남편에 대해서도 한번 살펴봅니다.

 

 

 

 

 

정미홍 전 아나운서는 1958년 7월 27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 (정미홍 아나운서 고향 서울)

올해 60살이죠. (정미홍 아나운서 나이).

 

(정미홍 아나운서 국적은 대한민국이고, 정미홍 남편 국적은 미국임. 밑에서 추가 설명)

 

(정미홍 종교는 기독교. 밑에서 추가 설명)

 

(정미홍 아나운서 학력 학교)

경기여자고등학교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 졸업

명지대학교 행정학 석사 졸업 (2001년)

 

 

(정미홍 앵커 프로필 및 경력)

1982년 KBS 공채 10기로 입사

1987년 KBS1 TV 9시 뉴스 진행 (정미홍 앵커)

1988년 서우 올림픽 중계방송 메인 앵커

1989년 미국 시카고 대학 방송언론과정 연수

1995년 조순 서울 시장 캠프 부대변인

1995년 서울시 공보국 공보과장 (별정직 4급)

1997년 5월 22일, 서울 시장 의전담당비서관 사퇴

1997년 ~ 2001년 MBC 뉴스 프리랜서 캐스터

2001년 한나라당 특임위원

2012년 새누리당 촉탁위원

더코칭그룹 대표이사

 

 

원래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정미홍은 아나운서가 되기 전에, 외국계 회사에서 일을 했습니다.

 

아나운서 정미홍 젊은시절 리즈 사진

 

 

 

 

정미홍: "대학 졸업 후 쓰리엠이라는 외국 회사에 입사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KBS 아나운서 시험에 응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함께 응시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떨어졌고, 난 (KBS에) 합격했다."

 

정미홍: "당시 KBS (아나운서) 연봉이 내가 다니던 외국계 회사의 절반도 안 되었지만, (아나운서란 직종에) 큰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기꺼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KBS로 갔다."

 

이렇게 KBS에 입사한 정미홍의 꿈은 '한국의 바버라 윌터스' 같은 앵커우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끝내 그 꿈은 실패하고 마는데, 이것이 젊은 시절 정미홍에게 큰 상처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정미홍: "KBS 아나운서 시절, 내 목표는 9시 뉴스 앵커가 되어 한국의 바라라 윌터스로 성장하는 거였어요. 그러나 생각처럼 안되니까 불행해했죠."

 

정미홍: "병을 얻고 죽을 고비를 넘긴 후 깨달았어요. 내가 얼마나 오만하고 욕심이 많았던가를..."

 

사실 정미홍이 KBS1 9시 뉴스 앵커가 되기는 했지만, 여기에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먼저, '아나운서 성상납 문제'가 벌어집니다.

 

정미홍 책과 인터뷰

- 방송국 실세인 선배가 집으로 불러 자고 갈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했고 그 뒤 어려움을 겪었다.

 

정미홍 사진

 

 

 

 

 

 

정미홍: "전 정말 피나게 노력해서 뒤늦게 앵커 자리에 올라갔어요. 뉴스 진행을 정말 잘할 자신이 있었고, 또한 하고 싶었지만, (KBS에서는 저에게) 시켜주지를 않았어요."

 

정미홍: "그래서 남들이 하지 않으려는 해외 교포에게 보내는 뉴스를 자발적으로 맡아서 했어요. 그래서 아무도 보지 않는 그 방송을 상당히 오랫동안 했습니다."

 

정미홍: "그렇게 혼자 노력하다가, (마침내) 아침뉴스를 진행할 기회를 얻게 된 거죠."

 

정미홍: "(당시) 9시 뉴스를 맡고 있던 젊은 후배 (여자) 아나운서가 자꾸 실수를 해서 문제가 되니까, 그때 아침 뉴스를 진행하던 제가 9시 뉴스를 갑자기 맡게 되었어요."

 

정미홍: "하지만 오래 하지는 못했죠. 당시 같이 진행하던 (남자) 선배 아나운서가 저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했는데, 결국 신입 (여자) 아나운서가 들어와서 3개월 연수가 끝나자마자 저를 내보내고, 어린 후배를 앉히더군요."

 

정미홍: "결국 전 KBS 9시 뉴스를 8개월간 진행했습니다."

 

사실 80년대까지만해도 여성 앵커는 남성 앵커에 대한 보좌역에 불과했습니다.

이 때문에 20대 중반의 예쁜 여자 아나운서가, 40대 중후반의 남자 아나운서 옆에 앉아서 '보기 좋은 그림'만 수행했을 뿐이죠.

 

게다가 1987년 당시 정미홍의 나이가 30살이었으니, 당시 한국의 방송계 관행으로 보면, 굉장히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듬해인 1988년 정미홍은 88서울올림픽의 메인 앵커를 맡았고, 이듬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미국 시카고 대학 방송언론과정 연수)

 

그리고 이 유학 기간동안 정미홍은 루푸스란 병에 걸리게 됩니다.

 

(참고로 루푸스 병이란, 자가항체와 면역복합체에 의해 인체의 여러 장기, 조직, 및 세포가 손상을 받는 전신자가면역질환임)

(우리나라에서는 10만명당 약 14명 정도의 루푸스 환자가 발생하는, 희귀병에 속하는 질환임)

 

아나운서 정미홍 남편 사진

 

 

이때 정미홍은 남편 티모시 E 트린카와 만나게 됩니다.

(원래부터 친분이 있었는데, 이때 결정적인 도움을 받게 됨)

 

(참고로 정미홍의 미국인 남편 티모시의 직업은 국제 변호사이고, 나이는 정미홍보다 약 3살 연상)

(정미홍과 남편의 첫만남과 인연은 밑에서 추가 설명)

 

아무튼, 미국 유학 시절 정미홍은 루푸스 병에 걸렸고, 이 때문에 한국에 돌아온 뒤, 방송 생활에 큰 지장을 받게 됩니다.

 

정미홍: "약의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빠지고, 얼굴이 퉁퉁 붓고, 피부 발진으로 얼굴에 얼룩덜룩한 반점이 남았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온 정미홍의 얼굴을 본 사람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했죠.

 

정미홍: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방송인 정미홍은 끝났구나’를 직감했어요."

 

이런 위기속에서 정미홍은 결혼을 결심했고, 미국인 남편 티모시 E 트린카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정미홍의 결혼 생활과 가족 관계는 밑에서 추가 설명)

(1992년 정미홍인 결혼했고, 1993년 KBS를 퇴사함)

 

게다가 당시까지만해도 정미홍이 루푸스 병을 앓는다는 사실을, KBS내에서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책을 준비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짐)

그런데 이때 KBS에서는 정미홍과 나이 많은 여자 아나운서들을 지방으로 발령을 내게 되었죠.

 

1993년 5월 2일 뉴스

- KBS가 최근 서울 본사에 근무하는 정미홍 아나운서 등 10 ~ 18년 경력의 중견 여자 아나운서 8명을 지방으로 인사발령을 냈다.

 

- 이에 KBS 여자 아나운서들이 남녀차별적 인사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 KBS 여자아나운서 30여명은 "특히 나이 많은 (여성 아나운서) 기혼자들을 무연고지로 보낸 것은 회사측이 '다른 뜻'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정미홍은 KBS 내에서의 여성 차별적인 정책으로 여러차례 피해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훗날 정미홍이 보이는 '여성관'과 주장하는 '여성정책'들은 굉장히 보수적이 됩니다.

 

- 정미홍의 여성부 폐지 주장과 군 가산점 부활 주장은 밑에서 추가 설명

 

 

 

 

 

 

정미홍: "(당시 지방 발령으로) 부산 지사 근무 발령이 났는데, 병(루푸스)을 감추고 회사를 다니고 있던 중이었다.  또 막 결혼한 터라 (1992년 결혼) 서울로 병원 다니며 이중 살림하기가 어려워서 생각 끝에 퇴직을 결심했다."

 

그리고 KBS 퇴사 직후, 정미홍은 차도를 보이던 루푸스가 재발하여 목숨의 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정미홍: "(지방 발령이) 억울하다는 생각만 했었어요. 가슴 속이 미움과 원망과 분노로 갈가리 찢어지는 듯했죠. 아마 그게 (루푸스) 재발병의 원인 됐을 거예요."

 

하지만 정미홍은 남편의 헌신적인 간호와, 스스로의 의지로 병을 극복하게 됩니다.

 

정미홍: "루푸스로 15년간 3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내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오래 동안 체질에 맞는 음식만 섭취하는 다이어트, 운동, 명상 등 나름 노력을 많이 한 편이다."

 

정미홍: "그런데 (다이어트, 운동, 명상보다) 병을 극복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병을 가진 사람의 마음 자세라는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 부정적 감정, 즉 스트레스, 분노 등을 다스리는 것 등이 치유에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정미홍: "생사를 넘나들면서 깨달았다. 죽음 앞에서 욕심은 아무 소용이 없으며,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최선을 다하고 기다리는 것뿐이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면 마음은 충분히 평화로울 수 있다."

 

결국 KBS 퇴사 이후 정미홍은 죽을 위기를 넘겼고, 이때의 경험이 그녀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리고 1995년 당시 서울시장 후보였던 조순 캠프에 합류하게 됩니다.

 

정미홍: "어느 날, 후배 아나운서 김자영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당시 김자영의 남편이 김민석입니다.

2002년 대선때의 일 때문에 '철새'란 이미지가 박혔지만, 그 이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잘 나가던 엘리트 정치인이었죠.

 

이처럼 정미홍은 김민석의 권유로 조순 캠프의 부대변인으로 합류하게 됩니다.

 

 

정미홍: "부대변인이라는 중책이 부담스럽지만, 존경하는 후보의 당선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에 즐겁게 뛰어다니고 있다."

 

그리고 조순이 서울시장에 당선된 뒤, 정미홍은 서울시 공보국 공보과장, 시장 의전담당비서관 등을 역임하게 됩니다.

(지방 별정서기관 (4급))

 

하지만 약 2년 뒤인, 1997년 5월 사표를 제출하게 됩니다.

당시 표면적인 이유는 '정미홍의 건강 문제'였는데, 언론에서는 좀 다른 보도를 합니다.

 

- 조순 서울시장의 대선행보를 둘러싸고, (정미홍의 사퇴는) 최병권 시장 비서실장과 빚어진 갈등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조순 캠프에 일을 하던 정미홍에게 '정치적인 야심'이 있었을까요?

 

정미홍: "(정계에 진출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욕심부리지 않는다. 적성에 맞는 소박한 자리가 주어진다면 일할 생각이고, 아니면 그뿐이다."

 

정미홍: "나는 정치와 정치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때 대변인을 맡은 것도 조순 시장의 개인적인 인품을 존경했고, 지자체 선거가 시민들의 축제와 같은 것이라 생각해서 맡은 것이지 정당은 관심이 없었다."

 

정미홍: "당시 대변인을 맡기면서 이해찬 씨가 정당에 입당하라 했지만, 입당해야 한다면 돕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결국 난 비당원 대변인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정미홍: "서울 시장 선거 후 자서전을 쓰면서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조순) 당선자께서 좀 도와 달라 하셨고, 결국 (내가 조순 시장의) 당선에 기여한 만큼 좋은 시장님이 되시는 걸 돕는 일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받아들였다."

 

이처럼 이때까지만 해도 정미홍에게는 정치적인 야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서울시 공무원 자리를 사임한 뒤에도 별다른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고, 다시 방송가로 컴백하게 되었죠.

 

정미홍: "어느 날, 우연히 모 식당에서 고 이득렬(李得洌) 당시 MBC사장을 만났어요. 당시 이 사장이 ‘요즘 뭐 해’ 라고 물으셨어요."

 

정미홍: "그래서‘그냥 놀죠 뭐’라고 답했더니, ‘방송하던 사람은 방송해야 돼’라고 말씀하시고는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정미홍: "그리고는 얼마 뒤에 MBC에서 연락이 왔고, 제 이름을 내걸고 토크쇼를 제안하더군요."

 

결국 정미홍은 MBC TV아침 교양 프로그램‘고향은 지금’의 리포터와 '정미홍이 만난 사람'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정미홍은 2001년을 기점으로 더 이상 방송 활동을 하지 않고 사업에 집중하게 됩니다.

 

또한, 정미홍은 2000년 총선때 민주당의 정대철을, 2002년 대선때는 정몽준, 2007년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2008년 총선때 민주당의 우윤근을 지원하기도 했는데, 갑자기 2010년대가 되면서 극우적인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왜 정미홍은 짧은 시간에 이렇게 크게 변했을까요?

 

 

우선, 정미홍의 미국인 남편 티모시 E 트린카과 그의 미국 집안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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